늑대에 관한 오만과 편견의 기록 리모왓지음 이한종 옭김 돌베개
김미림 구령중학교 3학년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고 나서 인류는 자신들이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존재에게 수없이 많은 손짓을 해왔다. 그것이 동물이 되었든 사물이 되었든 선례를 따른다. 중세 시대의 늑대가 그러했고 이 시대의 늑대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우리 머릿속의 늑대를 생각해보면 무엇부터 생각하든 부정적인 것들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른바 팔리는 늑대를 보고 늑대라고하여 어렸을 때 보고 자란 텔레비전 만화의 기억을 더듬어봐도 옹골찬 보름달이 뜬 밤에 고통스레 울부짖고 있는 늑대의 모습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늑대가 스스로 우월하다 자처하는 인간과는 달리 평생을 한 이성과 사랑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신화적 이미지와는 달리 먹이를 통해 생계를 잇는다면? 아마 우리가 갖고 있는 늑대에 대한 이미지를 모조리 깨어버리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울지 않는 늑대」는 인간동물의 오만함과 편견을 뛰어넘는 이 시대의 늑대와
책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내가 놀랐던 것은 아직 어린 나에게 늑대에 대한 편견은 너무나 단단하고 완고해서 큰 바위 속에 늑대가 박혀 있었던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도 서양사 늑대는 인간과 함께 살아왔던 존재이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늑대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깊고 많은 가지로 우리에게 박혀 있는지 알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우리가 이성이라는 동물에 얼마나 약한지 느끼게 하는 면도 인상적이다.
아마 어떤 이들은 이 책을 읽고도 늑대에게 호의가도 않는 편협한 인간이 되진 않길 바란다. 하지만 사실이 진실을 압박하기도 하지만 사실 속에서 진실에 대한 고백이 있다.
늑대는 대략 400만년 전까지 북미에서 인간하고 가장 번성하고 널리 퍼진 포유류였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늑대와 수천 년간 인연이 아닌 인근 한 혈연으로 묶여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밝혀주는 증거다. 하지만 인류가 분명히 상냥하고 양털 같은 생활을 함으로 늑대는 인간의 적이며 이 되었다.
그렇게 아무런 의심 없이 늑대를 우리의 적으로 받아들였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늑대에 대한 혐오에 대한 혐오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 늑대를 한동안 바라보길 바란다. 콧잔등에 살짝 찌푸린 눈과 뚱뚱한 귀, 그리고 사실 없는 눈빛까지. 마치 순한 강아지와 같은 늑대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길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번 변이나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세뇌의 완벽성에 놀랐는지 모른다. 실제로 늑대에 대 한 번씩 인지 쉽게 훑어본 적 없으면서 늑대는 잔혹하고 포악한 더러운 짐승이라고 세뇌시키버리는 지 모른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사람들은 으레 그런 실수를 범하곤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어리석고 무지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인류는 해를 가할수록 우리가 잊고 있는 IQ가 높아졌다고 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우리의 지능지수가 얼마나 낮아졌느냐가 아니라 세계인의 머릿속의 사상과 생각 하나하나가 미디어에 의해 독점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의 부분별함과 미디어의 막강한 힘이 세계인의 머리를 독식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CD 몇 장짜리의 지식이 아니라 우리 삶 속의 또 다른 늑대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니 하고 예
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대로를 불어넣는 능력이다.
현대의 미디어는 주인 빼앗긴 성능 좋은 확성기일 뿐이다. 지금 이 시간에 '성능 좋은 확성기는 우리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그러러니를 심어주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이에 한두 마리도 늑대의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모든 현대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만약 이 책이 나온 시대가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왔던 시대라면 이러한 책을 읽을 필요 없이 같이 살면서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책조차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거짓된 자연에 볼 수 없는 현대인들이, 매일마다 도시를 떠나 자연을 보고 싶어 바캉스를 떠나면서도 자동차를 일회용품을 잔뜩 싸가는 이들에게 「울지 않는 늑대」는 구원일지 모르겠다.
누구의 늑대가 누구인가? 어쩌면 제2, 3 늑대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