噎鳴열명-열명은 시간의 신으로 땅을 관정하는 대신(黎)의 아들 이자 황제헌원 의 후예다
태양과 달이 들어가느 곳에 살며 아버지를도와 일월성신(日月星神)의 운행 횟수를 관리 했다고 한다
*대지의신들
가이아(Gaia) : 가장 유명한 대지모신 가이아를 먼저 꼽을 수 있겠군요.
텔루스(Tellus): 로마의 대지의 여신. 로마에 키벨레(대모신) 숭배가 자리잡은 후 점차 잊혀졌습니다.
려(黎) : 중국 신화에서 천제 전욱의 신하로서, 땅을 관장했다고 합니다.
후토(后土) : 역시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오제 중 한 사람인 염제의 자손. 공공의 아들. 땅의 신이며 명부의 통치자. 손에 끈을 들고 사면팔방을 모두 관리한다네요.
중국 신화에서 후토HouTu后土는 ‘대지의 영주’ 또는 ‘대지의 여신’으로 불리며 중국 황제가 멸망할 때까지 숭배된 자연 신이었다. 후토는 ‘땅을 다스리는 신령’이라는 의미의 지기Dizhi地祗라고도 불리며 하늘을 상징하는 태일Taiyi太一과 유사한 존재였다. 땅에 제물을 바치는 의식은 보통 여름에 행해졌다. 전한 말기(BC 206년~BC 8년)에는 대지의 제단이 주로 남쪽에 세워졌다.
도교에서 후토는 천체의 중심에 있는 신인 황제의 조신이었다. 그녀는 또 사어四御(천지만물을 주재하는 네 명의 신, 옥황대제玉皇大帝, 중천자미북극대제中天紫微北極大帝, 구진상궁천황대제勾陳上宮天皇大帝, 후토황지기後土皇地祇) 중 하나였다. 황제를 돕는 신으로서 후토는 땅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밧줄을 갖고 있었다.
중국 고대의 유가 경전인 <예기>에 따르면 후토는 물의 신 공공Gonggong共工의 아들로 아홉 개 성을 다스렸다고 한다. 후토의 역할은 제국의 모든 지역을 평준화하는 것이었다. 이런 역할 때문에 고대 중국인들은 그녀를 땅(또는 대지)의 신으로 숭배했다. 황제가 세상을 다스리는 실질적인 지배자였다면 후토는 세상을 다스리는 정신 즉 신이었다. 한편 한 명의 신으로 숭배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광활하였기 때문에 각각의 지역 공동체에는 그녀를 불러 달래기 위한 사당이 세워졌다.
한편 초나라 굴원의 시를 모은 문집인 <초사>에는 후토가 대지 표면의 아래 어두운 영역을 지배했다고 한다. 넓은 의미에서 후토는 때로 토지와 사유지를 관리하는 지방 정부의 관리들을 칭하는 관직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황제(黃帝) : 특별히 흙의 신이랄 것은 없지만, 오행 중 흙의 덕(土德)으로 임금이 되고 흙은 누런 까닭에 황제(黃帝)라고 불리게 되었으니 한몫 끼워봅니다.
샤니(Shani) : 인도의 대지의 신-가이아 신 같은 신
게브(Geb) : 이집트의 대지의 신. 하늘의 여신 누트과 통하여 오시리스.이시스.세트.네프티스를 낳았습니다.
신(Sin) : 수메르 신화의 대지와 대기의 신 이며 우르 지방의 달의 신.수엔 혹은 난나라고도 한다. 역법의 주인으로서 신에 대한 예배는 유일신적인 경향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먼 날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는 신이었으며, 신의 계획은 어떤 신(神)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목동들의주인이기도 하며 풍요, 지하세계, 왕권과도 결부되어 있었다.
이니나(Ininna) 혹은 이난나(Inanna) : 수메르 신화의 대지와 사랑의 여신
서사시 "엔키와 세상 질서(Enki and the World Order)"는 엔키에 대한 소개와 우주 창조 이야기로 부터 시작되며 마지막에 부분에는 이난나가 엔키에게 가 모든 신들에게 영토와 특별한 힘을 주고 왜 자기만 제외했는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이난나 여신의 불공정한 처사에 대한 비난을 받은 엔키는 그녀에게 이미 영토는 마련하였으나 아직 지정하지는 않았다 답한다.
"이난나와 훌루푸(Huluppu) 나무" 신화에서 "길가메쉬, 엔키두와 지하세계(Gilgamesh, Enkidu, and the Netherworld)" 서문이 들어있는데, 여기서 이난나는 아직 젋고 힘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고 있다. 여기서 훌루프 나무는 아마도 유프라테스 강가에 자라던 버드나무로 추정되는데, 이난나 여신은 이 나무를 자신의 우르크 정원으로 옮겨 놓고는 다 자라면 깎아 자신의 왕관을 만들고자 한다
키(Ki) : 수메르 신화에서 말하는 태초의 땅. 모신(母神)으로, 인간의 창조를 도왔습니다.
수메르 판테온 이야기에 의하면 -바다로 상징되는 태초의 모신(母神) 남무는 혼자서 하늘인 안(An)과 땅인 키(Ki)를 낳는다.
그리고 아들인 안과 결합하여 세 명의 자식이자 손주이기도 한 두루트(Durttur,양들의 수호여신 ),
엔키(Anki, 지하수,지혜의 남신), 담갈눈나(Damgalnunna, 부인들의 여신)를 낳는다.
아들이자 손자인 엔키(Anki)가 지하수의 신이 되면서 원조 지하수의 신은 남무는 존재감이 약해진다.
거기다 안의 엄마이자 아내인 남무의 지위는 안의 후실이 된다.^^ 그렇게 태초의 모신은 지위와 권위가 많이 낮아진다.
그리하여 안의 정실 부인은 동생이자 땅을 상징하는 여신 키(Ki)가 된다. (아카드어로는 안투(antu)라고 불려진다.)
안은 정실 부인인 키와 사이에서도 두명의 자식을 낳는 데..엔릴(Enlil,바람의 남신)과 닌후루쌍(산과 출생의 여신)이다.
키샤 : 수메르 신화의 땅의 영
‘키샤 : 수메르 신화의 땅의 영’이었습니다. 수메르 문화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일어난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세계 3대 문명 발상지의 하나라고 합니다. 수메르인들은 3천명이 넘는 신들을 섬겼습니다. 각각의 도시 국가들은 마을과 땅이 있는 성벽으로 둘러싼 도시를 가지고 있었는데 각 도시의 중심에는 신전이었었고 각자의 신들을 숭배했습니다. 키샤도 그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메르 12개 도시 국가 중에서 Kish의 왕, Etana(c. 2800 BC)는 최초의 통일 도시 국가를 이룩했는데 Kish에서 섬긴 신의 이름이 KI라는 대지의 신입니다. 그리고 KI(대지의 신)을 상징하는 것이 ‘키샤(KISHA) : 대지의 영’이였습니다. 대지는 보통 표현하기를 ‘크다’라고 합니다.
사크파타(Sakpata) : 아프리카 폰족 전설의 대지의 신.
A figure of Sakpata, the god of earth, photographed by Sostoli,
알레(Ale) : 아프리카 이보족 전설의 대지의 여신 【알레(Ale)】 [이보족] 서아프리카 니제르 강 동쪽 나아지리아 동부에 사는 종족. 대지의 여신. 추쿠의 딸.
라티(Rati) :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풍요와 대지의 여신
라티(Ratih)는 인도네시아 발리 섬과 자바 섬에서 발견되는 힌두교 여신이다. 또 다른 라티(Rati)여신과는 다른 신격이다. 이름 자체는 '에로틱한 욕망'이라는 뜻이며 임신하여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남자를 유혹하는 성애의 여신이다. 옛날옛적에 칼라 라우라는 거인이 있었다. 데위 라티에게 수작을 걸었다가 거절당하자 거인은 비슈누의 왕궁으로 향했다. 거인은 쿠베라의 모습을 하고 왕궁에 숨어들었다. 그러자 데위 라티는 쿠베라가 사실은 거인 칼라 라우라고 경고했다. 비슈누는 거인이 신들 몰래 성수(티트라 아메르티)를 마셨다는 사실을 모른채 그를 참수했다. 이 때 성수가 그의 식도를 지나려던 참이었으므로, 몸은 죽고 잘린 머리만 평생을 살게 되었다. 달이 뜨면 칼라 라우는 데위 라티에 대한 증오로 그녀를 쫒아가 통째로 삼켰다. 하지만 몸이 없으므로 시간이 지나면 식도를 통해 여신이 다시 나왔다. 발리와 자바에서는 이를 월식이 뜨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아위텔린 츠타(Awitelin Tsta) : 주니 인디언족의 대모신. "대지의 어머니"라는 뜻 아위텔린 츠타(Awitelin Tsta)】 [주니 인디언] 대모신. 뜻은 "대지의 어머니". 아포얀 타치의 아내. 모든 생명의 씨앗이 아위텔린 츠타의 4개의 자궁 속에서 태동했다. 각 자궁 안에는 미완성의 생물들이 자랐는데, 그것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 기어다니며 따뜻한 햇볕을 받으려고 몸을 구부렸다. 최초의 인간 포샤이양키오가 그녀의 자궁에서 먼저 빠져나와 다른 생물들도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태양신에게 빌었다. 아워나윌로나가 보낸 신성한 쌍둥이 신이 그녀의 배를 가르고 모든 생물들을 세상으로 인도하였다.
주니족 (Zuni) > 은 미국 뉴멕시코주의 중서부에서 애리조나주의 경계에 거주하는 푸에블로 인디언의 한 부족으로, 이들의 기원과 초기 역사에 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상들이 땅 밑에서 출현하여 현재의 거주지역으로 옮겨 왔다고 하는 이야기가 신화를 통해 전해진다. 언어는 페누티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한다. 16세기에 스페인인과 처음 접촉했을 때, 이들은 하위쿠를 비롯한 5, 6곳의 마을에 살고 있었다. 이 마을들은 모두 합쳐서 시볼라의 일곱 도시 들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스페인의 코로나도를 비롯한 탐험가들이 찾아내지 못한 황금제국의 중심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17세기말 스페인인들이 푸에블로 인디언의 반란을 격퇴한 후, 주니족은 여러 층의 석조건물로 된 한 부락으로 몰려들었다.13개의 모계씨족이 사회를 구성하며 주요지도자는 남자들이다. 남자들은 주로 옥수수 농사를 짓지만 일부는 은과 터키석의 세공기술이 뛰어나다. 바구니 짜기와 도기 제조는 주로 여자들이 한다. 다른 푸에블로 인디언과 마찬가지로 주니족은 평화적이며 신앙심이 깊고 복잡한 제례조직을 갖추고 있다. 남자들은 때때로 가면과 복장을 갖추어 입고 카치나(kachina:또는 katcinas)라는 비의 신을 흉내낸다. 현대의 미국 생활에 상당히 많이 동화되었지만, 아직도 일부 전통문화가 남아 있다. 인구는 20세기말에 5,000명 남짓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포(Po) : 폴리네시아의 대지의 여신
레아 토라니(Preah Thorani)는 불교 설화 속의 대지의 여신이다. 태국에서는 프라 마에 토라니 (Phra Mae Thorani)라고 불리며 미얀마에서는 와톤다라(Wathondara)라고 불린다. Thorani는 산스크리트어로 '땅'이며, Pra는 '성스러운'이라는 뜻이고 Mae는 '어머니'이다. 말하자면 땅의 성스러운 어머니라는 뜻이다.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붓다가 명상에 잠겨 있을 때 마귀 마라는 붓다가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막고자 온갖 짐승과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온다. 그러자 붓다는 그동안 쌓은 공덕을 증명하도록 프레아 토라니를 소환했다. 여신이 오른손으로 땅을 내려치자 우뢰에 같은 소리가 울려퍼지며 땅이 갈라졌다. 주춤하던 마라의 군대가 다시 돌진하자 프레아 토라니는 머리카락의 물기를 짜내어 마라를 물에 빠트려 죽였다. 그래서인지 프레아 토라니의 석상은 보통 항마촉지인을 맺고 있다. 여신의 긴 머리에서 흘러내린 물은 '보시의 물'을 상징한다.
*황제헌원
황제 헌원씨는 염제를 대신해 B.C 4617년 등극 천문·지리·인사 등의 가르침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래서 문명의 개조로 위대한 성인으로 그리고 성·웅을 겸비한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황제(皇帝)의 성은 공손(公孫)인데, 희(姬)라고도 하며 이름은 헌원(軒轅)이다. 토덕(土德)의 천자로 토(土)는 황(黃)으로 황하(黃河)의 빛이며 황토의 평야로, 위대한 천자를 표현하여 황제라고 한 것이다. 유태국(有態國)의 제후 소전(少典)의 아들이며, 현재 중국의 하북성인 탁록(啄鹿:상곡(上谷))에 도읍 하였다.
그의 어머니가 북두칠성의 첫째별(樞星:추성) 둘레를 커다란 번갯불이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이에 감응(感應)해서 임신하여 낳은 것이 황제였다고 한다. 낳은 지 칠십일이 채 못 되어 능히 말을 하였고 모르는 것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 장성하매 더욱 총명하고 민첩하여 주위 사람들의 촉망을 받았다.
「전경」을 보면 『난을 짓는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있나니 치우(蚩尤)가 작란하여 큰 안개를 지었으므로 황제가 지남거(指南車)로써 치난하였다. 난을 짓는 자나 난을 다스리는 자나 모두 조화로다.』 (교법 3장 30절) 라는 구절이 있는데 역사적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염제 신농씨의 자손의 덕이 점차 쇠퇴해서 제후들이 서로 침략하고 공격하게 되었으므로 백성들은 괴로운 생활을 보내야 했다. 이에 황제 헌원은 처음으로 창과 방패를 만들어 침략을 일삼는 제후들을 정복했다. 마침내 황제와 염제유씨(炎帝楡氏)는 무력에 호소하여 판천(阪泉)의 들에서 싸웠다. 처음에는 쌍방이 서로 고전하였으나 3번의 싸움 끝에 황제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치우(蚩尤)만은 가만있지 않았다. 치우는 구리쇠(銅鐵)의 이마를 가진 사람으로서 곧잘 큰 안개를 일으켰다. 처음에는 황제가 불리하였지만 제후들과 연합하여 탁록(啄鹿)에서 결전을 벌였다. 치우는 짙은 안개를 일으켜 황제의 군대를 어지럽혔으나, 황제는 지남거(指南車)를 만들어 탁록의 들에서 싸워 그를 사로잡아 죽였다.
또한 「전경」에 『4617년 전 정사년에 황제 헌원이 왕위에 올랐으니 원의 시작이다. 만상만사가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모든 법과 모든 글의 근원이 된다. 천문·지리·인사 모두가 황제 때부터 가르침이 시작되었고, 또 사기에서 역시 기록하기를 황제부터 시작되었다. 四千六百十七年前丁巳 軒轅立極肇斯元 萬像萬事皆有是 諸法諸書 總此源 天文地理 人事 皆黃帝之所始敎而 史記記年亦自黃帝始也(사천육백십칠년전정사 헌원입극조사원 만상만사개유시 제법제서 총차원 천문지리 인사 개황제지소시교이 사기기년역자황제시야)』 (교운 2장 26절) 라는 내용이 있듯이 황제는 문명의 시조로 손꼽힌다.
황제는 염제를 대신하여 기원전 4617(1923년 기준) 천자로 등극하여 토덕의 왕이 되었다. 그가 입극할 때 오색구름의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났기 때문에 벼슬 이름에 운(雲)자를 붙였다.
그는 산림을 개척하고 도로를 개통시키는 등 하루도 편안히 지낸 적이 없었다. 동쪽으로는 해변까지 이르러 환산(丸山:山東省(산동성))에 올라 대종(岱宗:泰山(태산))에 미치고 서쪽으로는 공동(空桐:甘肅省(감숙성))에 이르러 계두산에 올랐으며 남쪽으로는 양자강(揚子江)에 이르러 웅산(熊山:호남성(湖南省))과 상산(湘山:湖南省(호남성))에 올랐으며 북쪽으로는 훈육(흉노의 별명(別名))을 쫓아버렸다.
천지산천(天地山川)의 신(神)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봉선(封禪:천자가 태산에 올라 토단(土壇)을 쌓고 天神(천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태산 아래의 소산(小山)인 양부(梁父)에 내려와 땅을 청소하고 山川神(산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은 황제 때에 가장 성행했다고 한다. 일찍이 구리를 캐서 솥(鼎)을 만들었는데, 세 발과 두 귀가 있는 그릇으로서 천자(天子)의 존위(尊位)를 상징하는 보배로운 솥으로 그 겉면에 만세의 교훈과 법칙을 새겨 두었다. 또한 배와 수레를 발명하고 집을 짓는 법과 옷 짜는 일을 발명했으며, 약초를 조사 분석하여 의료기술을 폈다. 풍후(風后)를 재상(宰相)으로 삼고, 역목(力牧)을 장군으로 임명하였으며 문자(文字)를 제작하게 하였다.
어느 날 황제는 꿈에 황하에 큰 물고기가 그림을 등에 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일월성진(日月星辰)의 형상을 알았다. 대요(大橈)에게 십간 십이지(十干 十二支) 60갑자(甲子)를 만들게 하였으며 용성(容成)은 역서(曆書)를 만들었고 예수(隸首)는 산수(算數)를 고안하여 농업과 제사에 쓰는 물건의 장단, 대소, 경중 따위를 명확하게 하여 백성들을 크게 이롭게 하였다. 그리고 영륜은 해곡(곤륜산의 북쪽지명)의 대나무를 써서 12율(律)의 대나무 피리를 만들었는데 피리는 봉황 수컷의 울음소리 여섯, 암컷 울음소리 여섯으로 되어있다. 음양십이율(陰陽十二律)의 음계(音階:중국악기 발달의 기초) 또 육율(六律)의 으뜸소리인 황종(黃綜)의 궁(宮)의 음에서 육려(六呂)가 생기고, 이것을 열두 달에 해당되어서 기후의 관측을 했다. 또 열둘의 종을 만들었는데(十二律에 배합시켜) 어느 것이나 다섯 가지의 협화음(協和音)이 되도록 만들어 졌다.
황제가 구(丘:河南省(하남성))에 있었을 때 서릉씨(西陵氏)의 딸 유조를 얻었다. 그에게 2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성을 이어받은 (제후가 된) 사람은 14명이었다. 그는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여러 신하들과 후궁들도 뒤따라갔다. 천자의 상(喪)을 가리켜 분검지통(分劍之痛)이라고 하는데, 유래된 말이라 한다. 그가 붕어하자 협서성(陜西省)에 묻혔으며, 황제의 능이 있는 고을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서 황능현(黃陵縣)이라고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