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수르 - 셈의 아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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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는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강력한 고대 제국으로, 특히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앗수르는 셈의 아들 앗수르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앗수르, 성경 속에 등장하다

  • 창세기 10장: 앗수르는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셈은 아람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조상으로 여겨지며, 앗수르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위치한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창세기 10장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
    *바벨: 함무라비(Hammurabi)왕 통치시 바벨론 제국의 수도이다. 완전한 히브리명은 바벨론(Babylon)인데 동은 티그리스, 서는 아라 비아 사막, 남은 페르시아 만, 북은 앗수르땅으로 둘러싸인 열대성 기후 지역이다.*에: 일명 '우륵'(Uruk)으로도 불려지는 도시로 바벨론 동남쪽에 위치하였다. 1954년 독일 학자들에 의한 발굴 작업시 이곳에서
    설형 문자판과 신전 등이 발굴되었다.*악갓: 사르곤(Sargon)이 창건한 아카드 왕조(B.C 2300-2100)의
    수도이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바벨론  부근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갈레: 사 10:9에서는 '갈로'로 불리운 성읍이다. 그러나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유프라테스 강 동쪽의 니플(Nippur) 로도 (Rawlinson), 티그리스 강동쪽의 크테시폰(Ctesiphon)으로도 (Jerome, Eusebius, Bochart) 추정한다.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르호보딜: '사각형 도시'란 뜻으로 니느웨의 한 위성 도시이다. *갈라: 니느웨 남방 약 80km지점, 티그리스 강과 삽(Zab)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했던 성읍이다.22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엘람:  페르시아 만에서 카스피 해사이에 거주하면서 활로 유명하던 족속이다(렘49:35). 이들의 영토는 동쪽으로 티그리스 강,서쪽으로 바벨론, 북쪽은 메대에 의해 경계지워졌는데 고대로부터 강력한 왕국.
    *앗수르: 티그리스 강 상류에 거주하다가 후에 소아시아로 퍼져 나간 앗시리아 족속이다. 앗수르는 B.C 2000년경부터 이미 독립 왕국 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였는데 북왕국 이스라엘은 훗날(B.C. 722)
    이들에게 멸망당하였다. *아르박삿: 앗수르 북쪽, 삽(Zab)강 상류 지역인 아라파키티스
    (Arrapachitis)에 거주하던 족속이다. *룻: 소아시아의 리디아인(Lydian)으로 보는 자들도 있는반면 메소
    포타미아 북편, 즉 아르메니아의 남방경계에 위치한 루브디(Lubdi) 주민으로 보는 자들도 있다.
    *아람: 메소포타이미아와 시리아를 주요 거처로 삼았던 아람족 (수리아인)이다. 이스라엘은 다메섹을 중심으로 한 이들 왕국과 많은 접촉을 가졌으며 전쟁도 자주 치루었다.
    열왕기: 앗수르 제국은 이스라엘 북왕국과 남유다 왕국을 침략하고 멸망시킨 강력한 적대 세력으로 등장합니다. 특히 산헤립 왕 시대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위협에 직면하여 큰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셈의 자손이라...나라대로였더라: 셈의 후예는 크게 북부 셈족과 남부 셈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 북부 셈족으로는 앗수르인, 아람인, 이스라엘인, 에돔인 등을 들수 있으며 남부 셈족으로는 아랍인을 들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셈족은 대체적으로 황색 인종으로 분류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앗수르 제국의 위대한 업적

 

앗수르의 제국 시대는 사실상 디글랏 빌레셀 1세(Tiglath-Pileser Ⅰ, B.C. 1115-1076년)부터 시작된다. 그는 서쪽으로는 지중해, 동쪽으로는 터키 동부 지역의 반 호(Van )까지 영토를 확장함으로써 제국의 기틀을 공고히 하였다. 하지만 그의 사후 약 200년 간 앗수르는 암흑기를 맞는다. 즉, 북방에서는 아르메니아 계 우라르투 왕국이 침공해 오고, 남방에서는 아람 족이 쳐들어와 영토를 훼손하고 상업 도로들을 빼앗아갔다. 역사의 뒷편으로 밀려나 있던 앗수르 제국은 B.C. 9세기경 앗슈르 나시르 팔 2세(Asshur-nasir-pal Ⅱ, B.C. 884-858년)가 등장하면서 전세()를 급반전시킨다.

그는 강력 철기 무기로 무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잔혹하기 그지없는 침탈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주변국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의 아들 살만에셀 3세(Shalmaneser Ⅲ, B.C. 858-824년)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수리아와 팔레스타인을 공략한다. 이때 그는 수리아 12왕들의 연합 세력을 무찌름으로써 그 지역을 속국화하여 앗수르 제국의 위세를 떨치게 된다. 앗수르 쪽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수리아 연합군 중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그 군대의 위용이 잠시 소개되며, 또 북이스라엘 예후 조공을 바친 사실이 언급된다. 그가 죽자 잠시 쇠퇴의 기미를 보이던 앗수르 제국은 디글랏 빌레셀 3세(Tiglath-Pileser Ⅲ, B.C. 745-727년)의 즉위를 계기로 앗수르 제국의 전성 시대를 열게 된다.

성경에 언급된 앗수르 왕들

 디글랏 빌레셀 3세 : 그는 바벨론으로 원정하여 그곳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었고, 만년에는 바벨론의 왕으로 즉위하기까지 했었다. 바벨론에서 그의 호칭은 ‘풀루’(Pulu)이며 성경에서는 ‘앗수르 왕 불’이라 언급된다(왕하 15:19). 당시 북이스라엘 왕은 므나헴이었는데 불에 패한 므나헴은 은 1천 달란트를 앗수르 왕에게 바치고 안전을 도모하였다. 얼마 후 북이스라엘 왕 베가와 수리아 왕 르신이 공모하여 디글랏 빌레셀 3세를 대항하게 되자, 디글랏 빌레셀 3세는 북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주민들을 앗수르에 포로로 잡아간다(왕하 15:29; 대하 28:20). 이때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엘라 아들 호세아를 원조하여 북이스라엘 왕 베가를 살해하고 그로 왕위에 오르도록 공작 정치를 펼치기도 했다. 한편, 성경에는 이 같은 국제 정세를 파악한 남유다 왕 아하스가 앗수르 왕의 호의를 얻으려고 조공을 바치고(왕하 16:8), 이방 신전을 건축했다는 기록이 있다(왕하 16:10).

 살만에셀 5세(Shalmaneser Ⅴ, B.C. 727-722년) : 북이스라엘 왕 호세아는 처음에는 앗수르에 복종했으나 훗날 주군()을 바꾸어 애굽에 조공을 바치게 된다. 이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가 쳐들어와 3년 간 사마리아를 포위하게 된다(왕하 17:3-4).

 사르곤 2세(Sargon Ⅱ, B.C. 722-705년) : 살만에셀 5세가 사마리아를 포위할 당시(B.C. 722년경) 그의 동생 사르곤 2세가 왕위를 빼앗아 앗수르의 새 왕으로 등극하고 마침내 사마리아 성을 함락시킴으로써 북이스라엘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시키게 된다(왕하 17:4-6; 18:11). 사마리아를 함락시킨 후 그곳 주민 2만 7천 명을 메소보다미아 메대에 강제 이주시켜 민족 혼합 정책을 폈다(왕하 17:16). 성경에는 사르곤 2세가 아스돗을 공격하는 장면이 소개되기도 한다(사 20:1).

 산헤립(Sennacherib, B.C. 704-681년) : 이름의 뜻은 ‘신은 형제들을 증가시켜 주신다.’ 사르곤 2세의 아들로서 니느웨를 수도로 삼고 제국 전역의 반역을 일소했다. 그는 남쪽으로 군대를 몰아 애굽을 공격하였고,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조공을 강요하기도 했다(왕하 18:13-16; 사 36-37장). 앗수르 비문에 의하면, 이때 유다 성읍 46개를 빼앗았다고 한다. 하지만 산헤립은 예루살렘 공격 후 갑작스럽게 귀국길에 오른다. 이는 선민을 도우시는 하나님 이적적인 섭리에 의해 이뤄진 일이었다(왕하 19:35). 유다 정복에 실패하고 귀국한 산헤립은 그의 아들에게 암살되고 만다(왕하 19:37).

 에살핫돈(Esar-Haddon, B.C. 681-669년) : 산헤립의 뒤를 이어 그의 총애하던 아들 에살핫돈이 왕위에 오른다. 에살핫돈은 앗수르 속국들의 반란을 막기 위해 속국들로 하여금 앗수르 신에게 영원히 맹세토록 하는 조약을 강요했다. 이때 조약에 체결한 나라 중에는 므낫세가 다스리던 남유다도 포함되어 있었다(왕하 21:1-9).

앗수르 제국의 몰락

에살핫돈의 후계자 앗술바니팔(Asshurbanipal, B.C. 669-633년)은 즉위 초 애굽 원정길에 올라 애굽의 디르하가를 살해하고 애굽을 앗수르 영토로 귀속시켰다. 하지만 앗수르 제국 내 각 지역에서 반란이 이어졌고, 바벨론에서는 앗술바니팔의 친형인 샤마슈 슘 우킨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정국이 소용돌이 쳤다. 앗술바니팔은 이 혼란들을 진압하고 잠시 안정된 치세를 하게 된다. 그러나 앗술바니팔이 죽자 앗수르 제국은 급속도로 쇠퇴하게 되고 주변국들은 속속 앗수르의 지배권에서 벗어나는 등 중근동 지역의 대변화가 진행된다.

특히, 앗술바니팔이 사망한 직후, 바벨론(갈대아인)의 나보폴라살(Nabopolassar, B.C. 625-605년)이 즉위하면서 앗수르에 반기를 들었다. 나보폴라살은 메대인들과 동맹하여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침공하여 앗수르 제국을 멸망시키게 된다(B.C. 612년). 나훔과 스바냐 선지자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나 1:1; 2:10; 습 2:13). 그후 바벨론은 새로운 패권국으로 역사 앞에 등장하게 된다. 한편 성경에서는 나훔과 스바냐 외에 여러 선지자들(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미가, 스가랴 등)이 앗수르에 대해 언급했으며, 특히 선지자 요나는 앗수르 수도 니느웨로 보냄받아 그곳에서 하나님 심판을 경고하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앗수르2 [Assyria]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가스펠서브)

앗수르 제국은 강력한 군사력과 정교한 행정 시스템을 바탕으로 중동 지역을 지배했습니다.

  • 뛰어난 군사력: 앗수르인들은 전차와 포위 공격 기술을 개발하여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 정교한 행정 시스템: 앗수르는 정복한 지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정교한 행정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 문화 유산: 앗수르인들은 아름다운 예술 작품과 건축물을 남겼습니다. 니느웨, 님루드 등의 도시 유적은 앗수르 문명의 번영을 보여줍니다.

앗수르와 이스라엘

앗수르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앗수르의 침략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고난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앗수르,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한때 강력했던 앗수르 제국은 결국 바빌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앗수르의 흥망성쇠는 인간의 권력이 얼마나 허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교훈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질문해주세요.

  • 앗수르의 어떤 부분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가요? (예: 앗수르의 신, 앗수르의 예술, 앗수르와 바빌론의 전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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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의 수호신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질문을 통해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앗수르인들은 어떤 신을 믿었나요?
  • 앗수르의 가장 유명한 왕은 누구였나요?
  • 앗수르는 어떤 무기를 사용했나요?